신국내성과 신부여성
옛날 바람의나라를 해본 유저라면 한번쯤 가본 그런 성이다 기존의 바람의나라 성과는 매우 다른 이질적인 공간이라
노란비서를 쓰다 신국내성, 신부여성이 뜨면 꽝으로 생각하고 노란비서를 한번 더 써본 기억 한번쯤 있었을것이다
이 성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세시마을과 고렙들의 성지 북방대초원, 길림성을 가려고 많이들 거처가는곳인데
단순히 세시마을과 북방대초원 길림성을 가는 통로라고 하기엔 너무 비약적으로 큰 맵이고 버려지고 있는 공간이 많다
얼마나 큰 맵이냐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들은 노란비서가 없으면 길을 잃어서 계정을 버리는게 흔했을정도고
각종 건물들은 많지만 들어가지지않는 오브젝트 건물과 울창한 나무들이 참 많았다
노란비서도 없이 이 맵에서 길을 잃었을때 주막처럼 생긴곳을 찾아 드디어 살았다! 하고 희망을 품지만 들어가지지 않는
모양만 건물인 주막과 건물이면 허탈감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반대로 우연히 길을 해매다 유저를 만나면
산에서 조난당하다 구조대원을 만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신 국내성과 신 부여성은 넥슨은 대체 무슨 의도로 만든걸까
때는 1998년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왜 만들었나?
1996~97년도에 쓰인 국내성 지도
초창기 1996~1997년도 바람의나라는 서버라는 개념도 없었고 아주 작은 서버에서 국내성 이라는 하나의 맵에서 모든 유저가 생활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만큼 인구 수도 적었을 시기고 가정집에 컴퓨터도 귀한 시절에
인터넷 온라인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 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8년도 부터 pc방이라는 개념도 생겨나고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이 익숙한 문물이 되고나서 바람의나라 인구수는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는데
넥슨은 유저수가 몰려 사냥터의 부족함과 인구수를 분산시키려고 하였다
1998년도 개발중인 신 부여성의 지도
유저들이 많아지면 사냥터를 더 많이 늘리고 그럼 맵도 당연히 커야겠지?
98년도부터 개발을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2000년도에 비로서 완성되게 된다.
신국내성과 신부여성은 기존의 성을 대체하는 방대한 맵으로 계획되었고
그것이 신 국내성과 신 부여성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이다
왜 지금은 버려진 맵이 된걸까?
유저들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문제는 맵이 방대하게 커져서 유저들의 불편함을 초래하였다
그 당시 찍힌 스크린샷을 보면 알수있듯이
성 이름에 '신'자도 안들어간걸 보아 앞으로 이 성으로 국내성과 부여성을 대체 하려는 의도도 엿볼수있다.
그리고 국내성, 부여성만 있는게 아니라 부여성남쪽, 국내성북쪽 처럼 위치에따라 맵이 달랐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쉬웠고 기존에는 사냥터를 가려면 그냥 익숙한 맵을 따라 가면 되었지만
바뀐 맵은 워낙커서 사냥터를 찾는거도 힘들었다 그 당시는 맵 기능도 없었고
초보자가 초보자사냥터와 쥐굴을 찾는데도 방대한 맵을 걸어서 찾아다녀야했고 일일이 좌표를 외워거나 적어둬야했다.
갑자기 커진 맵에 유저들의 불만이 속출하자
넥슨은 주막에서 사냥터로 바로 날라갈수있는 비서를 판매하기도 하였지만
유저들의 불만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넥슨은 2년동안 개발했던 신국내성, 신부여성을 패치후 일주일만에 롤백 시키는 결정을 하고
그 대신 제1집안성 제2집안성 같은 맵을 만들어서 사냥터의 부족함을 대처한다.
망한 이유
신국내성과 신부여성은 사냥터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만큼
사냥터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2000년도 당시 고구려 유저보다 부여 유저가 훨씬 적었다
부여 유저들은 상관없었지만 고구려 유저들은 신국내성에 사냥터가 없으면
신부여성까지 갔어야 했는데 이게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또한 사냥터로 들어가면
그 당시 개발자들만 들어갈수 있는 이상한맵으로 들어가지는현상과
게임이 팅기는현상 연옥, OX퀴즈장 등 매우 미흡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부분은 아직 더미데이터로 남아있다
최종적으로 신국내성과 신부여성은 망한 맵이 되었고
보스잡이 노가다를 하는 유저들이 가는게 아니면 버려진 맵이 되어버렸다
넥슨은 2년동안 고생해서 만든 맵을 삭제하고싶진 않았는지
같은해 나온 북방대초원과 세시마을 3차승급의 주무대인 길림성으로 가는 맵으로 쓰이게한다.
여담으로 당시 바람의나라 개발자들은 맵에 대한 디테일을 보이고 싶었던걸로 추정된다
우리가 아는 바람의나라는 성안에서만 생활하며 성안에서 사냥터를 찾아 사냥하는 방식이지만
고구려 부여 시절에는 사냥을 하려면 성 밖을 나가서 사냥을 했기에
성밖에 사냥터가 있던게 아닐까? 북쪽으로 갈수록 얼음이 덮힌 맵이 나오고 울창한 나무들이 많았던건
그 당시 성 밖은 이렇게 험했을거야 하는 디테일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6개월후에 3차 전직이 패치했는데
3차 전직의 주요 무대인 길림성은 신국내성과 신부여성의 맵과 닮아있다
나무가 울창하고 산세가 험한 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과는 망했지만 개발자들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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