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일

[리브메이트] 오늘의 퀴즈 5/25일자 정답

온유향 2019. 5. 25. 09:30
728x90
반응형

오늘의 퀴즈 5/25일자 정답 : 병자호란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12월 28일(음력 12월 2일)부터 1637년 2월 24일(음력 1월 30일)까지 조선과 청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병자란, 병란, 병자노란(丙子虜亂), 병정노란(丙丁虜亂), 만주의 조선 침공(Manchu invasion of Korea), 청의 조선 침공(Qing invasion of Joseon)이라고도 부른다.

청 제국의 숭덕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짧은 전쟁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쟁 포로로

수십 만의 백성이 청 제국으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유례없이 막심하였다.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만주어: Daicing Gurun-i Enduringge Han-i Gung Erdemui Bei)

삼전도비(三田渡碑)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라고도 한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47번지(당시 경기도 삼전도)에 있는 청 제국의 전승비이며 송덕비(頌德碑)이다.

병자호란 때 승리한 숭덕제가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인조 17년)에 세워졌으며.

이후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청나라 조정의 명으로 조선에서 건립)

머리와 받침돌 조각이 정교해 조선 후기의 뛰어난 비 중 하나로 손꼽히며, 치욕비(삼전도의 욕비(辱碑))라고도 불린다

비에는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出兵)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 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곧 회군(回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한산성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옛 중부면) 산성리에 위치한 남한산의 산성이다.

그렇지만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영역이 걸쳐있기 때문에 광주가 주로 관리하는 편이지만 세 도시가 같이 관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어 경기도에서 도립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조선 인조 때에 쌓은 성곽이며, 해발 497m의 청량산(淸凉山)을 서쪽 끝으로 하고,

해발 514m의 벌봉을 동쪽 끝으로 하는 긴 장방형의 돌로 쌓았다. 서쪽은 경사가 가파르고 높아서 험난하며, 다른 쪽은 능선이 긴 반면,

성 안은 낮고 평평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을 지키는 2대 산성이었다.

 

남한산성 공방전

1637년 1월 9일~ 2월 24일까지 조선군이 청군에 맞서 분전한 전투이다.

전략적으로는 조선군의 승리였으나, 2월 24일 인조가 항복하면서 조선의 패배로 끝났다.

728x90
반응형